KUSAMA ARCHIVE (쿠사마 아카이브)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1929~)는 1929년 일본의 나가노현에서 부유한 가정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는데, 데릴사위인 아버지는 외도를 상습적으로 외도를 일삼았고 이로 인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던 어머니는 쿠사마에게 아버지의 외도 현장을 감시하라는 요구를 했다. 쿠사마의 병적인 강박증과 성(性)적인 것에 대한 혐오는 이로 인해 생겨나게 되었다. 어릴 적 쿠사마는 예절학교를 다닌다는 조건으로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있던 쿠사마의 그림을 어머니가 꾸짖으며 빼앗았고, 빨간 꽃무늬 식탁보의 잔상이 둥근 "물방울 무늬(Polka Dots)"로 변형되어 온 집안에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경험은 기억 속에서 강렬하게 자리하게 되었고, 이로써 물방울 무늬가 그녀의 중요한 작업 소재로 자리하게 된다.

쿠사마는 1952년 고향인 마츠모토시의 영화관 2층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1957년 27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츠모토의 강가에서 그림 이천 여 점을 불태우며 “앞으로 이것보다 더 잘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씨애틀을 거쳐 뉴욕에서 수많은 회화, 설치 작업, 타블로이드 매거진 발행, 반전과 대항문화의 누드 퍼포먼스 등 획기적인 예술활동을 펼친 그녀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앤디워홀이 그녀의 설치 작업을 모방하고 백인문화 등으로 무형의 폭압과 차별을 겪고 한 차례 자살시도까지 했다.

결국 1973년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쿠사마를 “해프닝의 여왕”, 외설적인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볼 뿐 아무도 그녀를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고향인 마츠모토시에서 열린 그녀의 귀국 전시회는 그녀가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던 극장의 2층에 있던 갤러리였다. 그 이후 그녀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서 일본에서 근근히 전시를 이어갔다. 

1989년 뉴욕의 CICA 미술관에서 쿠사마의 회고전을 하면서 쿠사마는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단독 전시, 1998년 뉴욕 모마 미술관 <러브 포에버> 등 굵직한 전시를 통해 본격적인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며 전시 집계 관람객 수 500만 이상을 기록한 최고의 흥행 작가가 되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미국을 평정하겠다.”고 다짐이 마침내 세계 제패로 이루어진 것이다.



Yayoi Kusama was born in 1929 in Nagano, Japan, as the youngest of four children from a wealthy family. However, her childhood was not very smooth, Her father, son-in-law who lives with his wife's family habitually had an affair, and her mother, suffering from anxiety, asked Kusama to keep an eye on her father's affair. Kusama's morbid obsession and aversion to sexual things have resulted from this. When Kusama was young, she attended an art academy on the condition that she attended a school of manners. One day, Kusama's painting was taken away by her mother, who scolded her, and the afterimage of the red flower-patterned tablecloth was transformed into a round "Polka Dots" and experienced it all over the house. This experience became intense in her memory, making Polka Dots her important work material.

Kusama reportedly held her first solo exhibition in 1952 at a small gallery on the second floor of her hometown of Matsumoto in Japan. Despite her parents' opposition, she burned 2,000 paintings by Matsumoto's river before leaving for the U.S. in 1957 at the age of 27, pledging to "I will draw better painting than this in the future." Through Seattle, she gained public attention for her groundbreaking artistic activities, including numerous paintings, installation works, tabloid magazine publication, and nude performances of twists and counterculture. However, Andy Warhol copied her installation, suffered intangible tyranny and discrimination due to white culture and even attempted suicide once.

She eventually returned to Japan in 1973, but no one recognized Kusama as an artist, only considering her as the "Queen of Happening" and the protagonist of the obscene scandal. Her return exhibition in her hometown of Matsumoto was a gallery on the second floor of the theater where she held her first solo exhibition. Since then, she has barely continued her exhibition in Japan as an outsider of little attention.

In 1989, Kusama began to receive attention in earnest when she took a retrospective exhibition at the CICA Museum of Art in New York. Since then, she has emerged as a full-fledged star through big exhibitions such as the exclusive exhibition at the Japanese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in 1993 and the 1998 MoMA Museum of Art "Love Forever" in New York, becoming the best box office artist with more than 5 million visitors. On the first day of her arrival in New York, she went up to the Empire State Building and said, "I will calm the United States," and finally conquered the world.